[이 아침에]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뉴욕시 맨해튼 북쪽에 있는 유대교 신학교의 한 교수에게 어떤 젊은이가 찾아왔다. 젊은이는 교수에게 훌륭한 랍비가 되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다.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이자 존경받는 스승인 랍비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찾아온 젊은이에게 교수는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교수의 질문은 랍비가 되려는 젊은이의 소명과 인생 여정을 묻는 물음이 아니라 그날 신학교까지 온 경로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젊은이는 70번가에서 신학교가 있는 120번가까지 브로드웨이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가 물었다. “96번가에 있는 노숙자 여인을 보았나요? 도움을 청하는 작은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여인 말입니다.” 젊은이는 못 보았다고 말했다. 교수가 다시 물었다. “그럼 117번가에 서 있는 퇴역 군인을 보았나요? 야구 모자를 쓴 사람 말입니다.” 이번에도 젊은이는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학교 앞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키 큰 남자를 보았나요?” 계속되는 질문에 할 말을 잃고 그저 고개만 가로젓는 젊은이에게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 랍비가 되겠다는 것입니까?” 랍비가 되겠다고 찾아온 젊은이에게 따끔한 질문을 던진 이는 유대교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랍비인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이다. 그는 삶의 자리를 지키느라 올 한 해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향해서도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덧붙여 이렇게 묻는다. ‘한 해 동안 살면서 주위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았는가?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부르짖는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는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이들의 신음을 들었는가? 홀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이들의 탄식을 들었는가?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해 굶주리는 이들의 비쩍 마른 몸을 보았는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자연을 보았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들의 눈물을 보았는가?’ 그런 질문 앞에 우리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런 세상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습니까? 나라도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속으로 읊조리는 볼멘소리는 핑계일 뿐이다. ‘어떻게 주위에 있는 사람과 세상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까?’라는 또 다른 꾸짖음만이 귓가에 맴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다 해결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세상을 향해 눈을 감고 귀를 막지는 말아야 한다. 누군가 내 아픔을 알고 있고, 누군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와 격려를 받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이제 2023년도 얼마 안 남았다. 한 해 동안 우리 곁을 스친 이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 지금이야말로 주위를 살필 때다. 내년 이맘때쯤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눈물 흘리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며 살았다는 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맞는 새해에는 희망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유대교 신학교 그날 신학교 노숙자 여인